건축
'수연목서'
이충기 + 비앤드건축사사무소
사람 ‐ 프로그램
건축주는 사진가와 나무공예 디자이너 부부다. 목수였던 장인에게 이어받은 오래된 목공 도구를 살려 취미를 넘은 안목과 전문성으로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건축주는 목공 작업을 할 수 있는 목공예 공방과 나무, 사진,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과 공간을 매개로 차 한잔을 나눌 수 있는 작은 갤러리 겸 북 카페를 요청하였다. 여행을 통해 만난 남편 건축주는 산의 우직함과 나무의 솔직함을 닮은 성격이었고 그의 눈을 통해 표현된 사진 또한 그러하였다. 남편의 성향과 부인 건축주의 나무와 책에 대한 관심과 섬세한 안목에 힘입어 그들의 희망이 공간에, 형태에, 재료에, 디테일에 반영되었다. 이 집이 그들이 좋아하는 나무와 책을 담는 공간, 그것을 통해 삶을 갈고닦는 수연목서의 공간이 되는 것은 당연하였다.
땅 ‐ 배치
대지는 곤지암의 동쪽과 양평의 서쪽을 연결하는 국도와 가까운 여주의 한가한 도로변에 위치한다. 영동고속도로 동곤지암 IC에서 차로 5분 정도 양평 방향으로 가다가 산북면 사거리에서 주어리 방향으로 좌회전해서 500m 거리에 있다. 양쪽에 산을 끼고 남북으로 뻗은 도로를 따라 산, 도로, 대지, 농지, 하천, 산의 다섯 켜가 나란히 선을 이루며 달리는 길고 좁은 형상의 땅이다. 도로와 대지, 산의 선을 따라 건물을 나란히 선형으로 배치하고 산의 모습을 닮은 경사로 된 박공 지붕 형태를 앉혔다. 그리고 내외부 어디서나 양쪽에 있는 산이 보이도록 개구부를 내었다.
박공 ‐ 풍경
목공방과 갤러리 카페, 두 개의 동을 중정 사이에 두고 배치하여 2층 브리지로 연결하였다. 두 개 동 모두, 작은 2층 면적을 두고 나머지를 크게 오픈하여 두 개 층이 하나의 높이를 공유하는 단면 공간을 계획하였다. 이는 크지 않은 면적과 공간에서 주변 풍경을 높이가 다르게 감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내부 공간은 벽과 지붕, 지붕과 지붕이 만나는 코너 부분의 보를 역보로 처리하여 면과 면이 만나는 박공 형태의 선을 강조하였다. 산과 면하는 경사진 지붕을 이어받아 내려온 동쪽과 서쪽의 외벽은 솔리드한 벽돌로 디자인하여 벽의 창을 통해 양쪽 산의 풍경을 액자 형태로 끌어들이도록 크기와 숫자를 제한하였다. 남 북측 박공형 입면은 유리 커튼월로 투명하게 처리하여 도로를 따라 길게 뻗은 선형의 풍경이 건물을 관통하도록 디자인하였다.
벽돌 ‐ 노출콘크리트
외벽 재료는 대지를 방문했을 때부터 주변의 푸른 산과 이 땅에 어울리는 재료로 적벽돌을 떠올렸고 재료의 질감을 고려하여 형태와 공간계획을 하였다. 더 붉고 일정한 색상을 내도록 적고벽돌 표면을 커팅하여 사용하여, 단순한 형태를 강조하였고 수직 줄눈 없이 수평 줄눈만 두어 매스감을 강조하였다. 내부는 하나의 재료로 일체감 있는 공간을 강조하기 위해 천장 마감 없이 벽과 천장 모두 대나무 노출콘크리트 공법을 선택함으로써 대나무 마디와 몸체의 섬세하면서도 단순한 질감을 극대화하였다. 대나무 노출 공법은 유로폼을 갱폼(Gang Form)으로 제작하고 그 위에 대나무를 고정하여 철근 배근 후 세워서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공법을 개발, 적용함으로써 경제적 효과를 거두었다. 화장실 등의 내부 벽체 일부는 적고벽돌을 가공 없이 사용하여 대나무 노출콘크리트와 대비되는 질감을 표현하였다.
계단 ‐ 조명
오픈형으로 디자인한 계단은 비교적 단순한 내부 공간에서 시선을 끄는 오브제로 작동하도록 의도하였다. 두 개의 계단을 중정 중심으로 대칭시키고 재료 및 형태 측면에서 차별적, 대비적 효과가 나도록 다르게 디자인하였다, 공방 동 계단은 측면 흑색 철판에 체리색 챌판의 일반적인 콘크리트 계단으로 디자인하였고 갤러리 동 계단은 벽돌 기단부로 계단참을 조성하고 철재 구조 위에 백색과 녹색의 대리석을 얹어 강조함으로써 기능성과 시각적 효과를 꾀하였다. 내부 조명은 건물 배치와 평면 형태, 단면 형태를 따라 선형의 등과 펜던트 등을 선택하여 대나무 노출콘크리트 벽체의 질감이 강조되도록 간접조명을 채택하였다.
마음 ‐ 사람
완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소문을 듣고 찾아 오는 사람이 늘면서 수연목서의 공간이 다양한 사건과 풍경으로 채워지고 있다. 방문하는 사람에 비해 부족한 공간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은 한편 즐겁고 기쁜 일이지만 공간의 확장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건축주에게 너무 빨리 찾아왔다. 어닝 같은 가설장치 등을 고민하던 나에게 건축주가 “이 건물의 형태와 공간을 보고 싶어 찾는 사람들을 위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 건물에 추가로 무엇을 덧대거나 못질을 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하였다. 건축을 존중해주는 더 이상의 좋은 표현이 있을까? 공간은 상황에 맞게 변화하고 대응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건축이 지니는 숙명이다. 수연목서가 세월이 흘러도 나무와 책을 품고 건축주와 함께 멋있게 늙어가는 건물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글 이충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진행 김예람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이충기
이충기는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시 도시재생명예시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리모델링 건축과 마을가꾸기, 공공디자인 등의 사회·공공적 활동과 도시,건축의 재생 및 재활용 분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인왕산초소책방, 진집, 선벽원, 대연교회, 제주전문건설회관, 진광교회, 옥계휴게소, 인삼랜드휴게소, 가나안교회, 경주실내체육관, 금동주택, 동다, 수애헌 등이 있다.
이상복
이상복은 동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시립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평택시 통합심의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017년 비앤드건축사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고급 단독주택, 오피스텔, 오피스, 지식산업센터 등을 다수 설계했고, 호텔 인테리어 회사인 HBA의 로컬파트너로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하는 토털디자인 분야의 업무까지 수행하고 있다.